학습 유형이라는 신화
교사 열 명 중 아홉 명 가까이가 학생의 학습 유형에 맞춰 가르치면 더 잘 배운다고 믿는다. 제대로 검증하면 그 주장은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언어에서는 그 믿음이 가장 필요한 기술을 앗아 간다.
교사 열 명 중 아홉 명 가까이가 학생의 학습 유형에 맞춰 가르치면 더 잘 배운다고 믿는다. 제대로 검증하면 그 주장은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언어에서는 그 믿음이 가장 필요한 기술을 앗아 간다.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생의 학습 유형에 맞춰 가르치면 더 잘 배우는가’라고 물으면 거의 모든 손이 올라간다. 2020년의 한 종합 검토는 열여덟 나라의 교육자 만오천 명 이상을 다룬 서른일곱 편의 연구를 모아, 그중 89%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밝혔다. 예비 교사들 사이에서는 비율이 더 높았다. 교육에서 이만큼 확신을 얻는 생각은 드물다. 그리고 이만큼 자주 검증되고 이만큼 꾸준히 떨어진 생각도 거의 없다.

이 신화는 모호함 덕에 살아남는 면이 있으니, 실제로 무엇을 주장하는지부터 갈라 보는 편이 좋다.
첫 번째 주장은 사람마다 선호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도표를 보고 싶어 하고 누구는 말로 듣고 싶어 한다. 명백히 참이고, 아무도 다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주장이다. 선호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면 더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 연구자들은 이를 맞물림 가설(meshing hypothesis)이라 부르며, 이것이 이 발상의 실용적 내용 전부다. 이것을 빼고 나면 ‘학습 유형’은 취향에 관한 진술일 뿐이고, 어느 학생이 파란색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보다 수업에 더 쓸모 있지 않다.
대개 건너뛰는 단계이자 핵심이 여기 있다. 맞물림이 작동함을 보이려면 ‘시각형 학습자가 그림으로 배웠을 때 잘했다’는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도표가 있으면 대체로 누구나 잘한다. 그 결과는 ‘그 내용에는 그림이 그냥 더 나은 수업이었다’는 설명과도 똑같이 잘 맞는다.
이 주장이 요구하는 것은 교차다. 학습자를 유형으로 나누고 수업을 방식으로 나눈 뒤, 각 집단이 자기 방식에서 가장 잘하고 다른 방식에서는 더 못한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오직 그 무늬만이 ‘맞춘 것’ 자체가 일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에 못 미치면 학습 유형이라는 이름표를 단 좋은 수업 연구일 뿐이다.
2008년 해럴드 패슐러, 마크 맥대니얼, 더그 로러, 로버트 비요크는 바로 그 무늬를 찾아 문헌을 훑었다. 그런 무늬를 잡아낼 수 있는 설계를 쓴 연구가 거의 없었고, 그런 설계를 쓴 몇 안 되는 연구 가운데 여럿은 맞물림 가설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결과를 내놓았다. 결론은 단호했다. 학습 유형 검사를 일반적인 교육 실천에 집어넣을 만한 증거 기반은 없다는 것.
이후의 잘 설계된 연구들도 같은 자리에 내려앉았다. 베스 로고스키와 동료들은 성인들의 듣기·읽기 선호를 측정한 뒤, 같은 내용을 오디오북 또는 전자 텍스트로 가르치고 이해도를 검사했다. 맞추는 것은 아무 차이도 만들지 않았다. 더 큰 설계로 다시 수행한 연구에서는 결과를 아예 제목에 넣었다. 학습자의 학습 유형 선호에 맞춘 수업은 학습을 향상시키지 않는다고.
도구들 자체도 사정이 낫지 않다. 프랭크 코필드가 이끈 2004년 체계적 검토는 약 3,800편의 논문을 훑고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열세 개 모형을 자세히 살폈다. 상당수가 가장 기본적인 기준에서 무너졌다. 같은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두 번 주지 못할 만큼 신뢰도가 낮은 것도 여럿이었다.
이토록 질긴 믿음은 어리석음의 산물이 아니다. 신중한 사람들이 믿는 데는 몇 가지가 함께 작용한다.
선호는 적성이 아니다. 그림을 즐기는 것과 그림에서 더 많이 배우는 것은 다르고, 둘이 함께 다녀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일상에서 그 둘을 갈라 볼 일이 거의 없을 뿐이다.
수월함은 배움처럼 느껴진다. 좋아하는 방식으로 오는 내용은 더 매끄럽게 들어오고, 매끄러움이야말로 뇌가 숙달로 착각하는 신호다. 선호하는 방식은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이해했다는 감각이다. 다만 기억을 더 만들지는 않는다.
이름표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설명한다. ‘나는 시각형이야’는 흩어진 백 개의 기억을 — 나를 잃어버리게 한 강의, 나를 구해 준 도표를 — 하나의 깔끔한 이야기로 묶는다. 모든 사례에 들어맞는 설명이 만족스러운 이유는, 바로 아무것도 그것을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판본의 나를 만날 일은 없다. 수업이 잘 안 풀렸을 때, 반대 가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같은 한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땠을지 볼 수 없으니, 이미 믿고 있던 이야기가 그 빈칸을 채운다.
가장 필요한 것을 건너뛸 면허를 준다. ‘나는 청각형이 아니야’는 듣기 연습을 피하기에 편안한 이유다. 그러나 듣기를 피하는 학습자는 시각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학습자가 될 뿐이다.
언어에서 방식은 포장이 아니라 내용이다. 분수는 산가지로 가르치든 말로 가르치든 같은 분수다. 그러나 ship과 sheep의 차이를 글로 읽어서 듣게 되는 사람은 없고, 성조를 표에서 얻는 사람도 없다. 듣기·말하기·읽기·쓰기는 한 기술을 담는 네 가지 포장이 아니다. 네 가지 기술이고, 각각은 그것을 해 봐야만 익혀진다.
고정된 이름표를 나눠 준다. ‘나는 원래 언어 쪽이 아니야’는 증거가 뒷받침하지 않는 경계선을 그려 놓고, 학습자는 그 선을 몇 년씩 지킨다. 실제로 진보를 예측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발상은 매력적이고 증거는 얇다. 검증을 견디고 남은 것은 이름표보다 나은 것이다. 당신은 시각형 학습자도 청각형 학습자도 아니다. 당신은 이 모든 통로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고, 언어에서는 그 통로 하나하나가 다 필요한 사람이다.
같은 내용을 쉬운 말로 다시 들려줍니다 — 어린 독자를 위해, 또는 요점만 빠르게 잡고 싶은 분을 위해.
거의 모든 교사가 믿는다. 교무실에서 ‘학생의 학습 유형에 맞춰 가르치면 더 잘 배우는가’라고 물으면 거의 모든 손이 올라간다. 열 명 중 아홉 명쯤이다.
여러 번 검증되었다. 그리고 계속 떨어진다.
주장 하나: 사람마다 선호가 있다. 누구는 그림을 보고 싶어 하고 누구는 말로 듣고 싶어 한다. 참이다. 아무도 여기서 다투지 않는다.
주장 둘: 선호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면 더 많이 배우게 된다. 중요한 건 이쪽이다. 교사가 무엇을 할지 바꾸는 것은 이 부분뿐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것도 이 부분이다.
여기서는 속도를 늦출 만하다. 이 발상이 무너지는 자리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시각형 학습자가 그림으로 배웠을 때 잘했다’를 보였다고 하자.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좋은 그림은 거의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 그냥 그림이 더 나은 수업이었을 수도 있다.
증명하려면 바꿔 봐야 한다. 두 집단 모두를 두 방식으로 가르쳐라. 그러면 각 집단이 자기 방식에서 가장 잘하고 다른 방식에서는 더 못해야 한다. 그 교차하는 무늬가 증명의 전부다.
연구자들이 그 무늬를 찾아 나섰을 때, 제대로 검증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검증한 연구에서는 그 무늬가 없었다.
이 사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나는 청각형이 아니야’는 듣기 연습을 건너뛰기에 아주 편안한 핑계다. 그러나 듣기를 피하는 사람은 시각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언어에서는, 그것이 도착하는 방식이 곧 그것 자체다. 분수는 산가지로 가르치든 문장으로 가르치든 분수 그대로다. 그러나 ship과 sheep의 차이를 글로 읽어서 듣게 된 사람은 없다. 표에서 성조를 꺼내 온 사람도 없다.
듣기·말하기·읽기·쓰기는 한 기술을 감싼 네 겹의 포장지가 아니다. 네 가지 기술이다. 각각은 바로 그것을 해야만 배워진다.
당신은 시각형 학습자가 아니다. 청각형 학습자도 아니다. 당신은 이 모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람이고, 언어에서는 그 하나하나가 다 필요한 사람이다.
이 글들은 학습 과학과 언어학에서 정립된 연구를 종합한 것입니다. 주요 출처 및 참고 자료:
이 물음은 집중이 훈련하면 커지는 근육이라고 전제합니다. 가장 튼튼한 증거는 훈련된 몫이 거의 옮겨 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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