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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했나요?

그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는데, 상처가 될 말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저는 맹세했습니다.

Thom 2026년 9월 5일 4 분 읽기 사람과 사람

이 글은 Thom이 할머니를 기리며 페이스북에 연재한 100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집안 어른 한 분이 요 며칠 편찮으셨는데, 다행히 아주 빠르게 나으셨습니다. 오늘 그분 생각이 나다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때에 제가 무슨 말을 했고 무엇을 했는지를 떠올렸습니다.

할머니의 칠일재를 올리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분은 쏘안 아주머니의 가게 선반을 다시 칠하고 계셨고, 커피를 아주 좋아하시는 것을 알기에 저는 둘러앉아 이야기하던 온 식구에게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씩 탔습니다. 그분은 칠을 하면서 한 잔을 드셨고,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둘이서 두 잔은 너무 적어요.

그때 그분의 눈빛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참 즐거워 보이셨고, 저는 그 순간이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자 곧 벤저민 잰더(Benjamin Zander)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본 것인데, 자꾸만 제 생각 속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의 힘은 아주 많은 것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한 여성에게서 배웠습니다. 아우슈비츠(나치 독일이 폴란드에 세운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녀는 겨우 열다섯 살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습니다.
여덟 살 난 남동생과 함께였고, 두 남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뒤였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생의 신발이 없어져 있었어요.
저는 동생을 나무랐어요. ‘너는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니, 제 물건 하나 간수하지 못하니?’」
누나가 남동생에게 하는 말이란 원래 그런 것이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녀가 동생에게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살아남지 못했으니까요.
아우슈비츠에서 나오면서 그녀는 한 가지 맹세를 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우슈비츠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맹세했어요. 그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는데, 상처가 될 말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요.」

https://youtu.be/r9LCwI5iErE?si=zgLlcQiXIOgrrHkn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가 안개 속으로 옅어져 가고, 그 위로 두꺼운 잿빛 구름이 낮게 덮여 있다. 앞쪽에는 잎이 진 나뭇가지와 푸른 덤불이 있다
2022년 10월, 끼꽝산의 맑은 산 풍경입니다

기억해 두세요 — 며칠 뒤에 다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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