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설거지는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온전히 사는 순간을 한 순간도 잃지 않습니다.
이 글은 Thom이 할머니를 기리며 페이스북에 연재한 100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거지는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온전히 사는 순간을 한 순간도 잃지 않습니다.
이 글은 Thom이 할머니를 기리며 페이스북에 연재한 100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바로 좋은 사람이 되는 이는 아무도 없어,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그러니 둘레의 좋은 사람들을 보고, 그들이 무얼 하는지 보고 따라 하는 거야」
(노래 「Nấu ăn cho em」의 가사)
저에게 설거지라는 것은 두 시기로 나뉩니다. 열두 살 되던 해 여름의 앞과 뒤로요. 하하.
제 삶에서 처음으로 설거지를 좋아하게 만든 것은, 사촌 언니 투(Thu) 언니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본 일이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언니는 그릇을 모두 대야에 쏟아 넣고 물을 틀고는, 아주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얼마나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씻어 내던지요. 나중에 돌이켜 보며 생각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자잘한 기억을 오래 간직할까? 아, 그렇구나. 무슨 일이든 마음을 기울여, 하나의 예식처럼 귀하게 여기며 하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남는구나.
그리고 이것은 틱낫한 스님의 책 『An lạc từng bước chân』(모든 걸음마다 평화)에 나오는 「설거지」 대목입니다.
「우리는 흔히 설거지가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수대 앞에 서서 소매를 걷고 두 손을 따뜻한 물에 담그면, 설거지가 즐겁고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그릇 하나하나를 느긋하고 조심스럽게, 그릇에도 물에도 두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마음을 두면서 씻는 데 시간을 들이기를 좋아합니다. 후식을 얼른 먹으러 가려고 서둘러 설거지를 한다면, 설거지에 쓴 그 시간은 쓸모없고 아까운 시간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삶의 매 초, 매 분이 하나의 신묘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릇들이 여기 있다는 것부터가 하나의 신묘함이고, 제가 여기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신묘함입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행복할 힘이 저에게 없다면, 그저 얼른 끝내고 후식을 먹으러 가고 싶을 뿐이라면, 그 후식을 맛볼 힘도 저에게는 분명 없을 것입니다. 먹는 동안에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느라, 향기롭고 맛있는 후식을 먹는 그 즐거움이 날아가 버릴 테니까요. 저는 늘 이 계획 저 계획에 앞으로 떠밀리며,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법을 도무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알아차림의 빛 안에서는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이 거룩해지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사이의 경계도 사라집니다. 저는 설거지에 오랜 시간을 들이는 편이지만, 매 순간을 온전히 살기에 내내 행복합니다. 설거지는 목적이자 수단입니다. 그릇을 깨끗하게 하려고만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거지는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온전히 사는 순간을 한 순간도 잃지 않습니다.」
설거지하는 사진은 한 장도 없어서, 대신 옥수수를 삶는 사진을 올립니다. 옥수수는 저희가 먹고, 삶은 물은 늘 할머니가 드셨습니다.
그 댁에서 지낸 2주는 아테네에서 제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아이와 하고 싶은 단 한 가지, 함께 읽는 것.
그 영어 영상만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고, 덕분에 다시 일하러 나가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