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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 덜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입니다.

Thom 2026년 9월 5일 6 분 읽기 마음챙김

이 글은 Thom이 할머니를 기리며 페이스북에 연재한 100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2017년 7월, 저는 타이완 타이중에서 열린 열흘짜리 위파사나 명상 과정에 참가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늘 쓰고 있는 아주 중요한 경험을 그때 얻었는데, 정작 그 뒤에 어떤 이치가 있는지는 알아볼 생각을 못 하고 지냈습니다. 며칠 전, 할머니께 사 드렸던 책 오쇼의 『붓다』를 다시 읽기 전까지는요.

위파사나 과정에서는 하루에 열 시간쯤 앉아 있습니다. 나흘째가 되자 허리가 끔찍하게 아팠고, 그날 밤은 내내 몸부림쳤습니다. 닷새째 아침에 감각(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깊이 관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려움, 화끈거림, 콕콕 쑤심, 저림, 뻐근함 — 어떤 느낌이든 무상하게 왔다가 간다는 것, 그것을 감정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심각하게 만들지도, 비극으로 만들지도 않으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요.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엿새째 아침에 그 통증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작은 상처나 작은 통증이 있을 때면 저는 통증과 친구가 되는 법을, 약을 먹기 전에 먼저 그것을 맞이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러면 대개 훨씬 부드럽게 지나가고, 지나가는 것도 한결 편안합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나중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만났습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그러면서 이 이치를 한 겹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설명은 이것입니다. 오쇼의 책 『붓다』에 실린 「여여(如如)」 장에서 옮깁니다.

「여여라는 말을 이해해 보십시오. 붓다의 가르침은 그 말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분의 용어로는 타타타(tathata), 곧 여여입니다. 불교의 관점 전체를 그 한 말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살고, 개념 자체가 사라져 여러분이 곧 여여가 될 만큼 깊이 사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여러분이 병이 났다고 합시다. 여여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몸의 본성이다.’ 싸우지 말고, 맞서지 마십시오. 머리가 아프다면 —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자연의 법입니다. 그러면 갑자기 변화가 옵니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 변화가 그림자처럼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아픈 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한결 누그러집니다.
「해 보십시오. 불편함을 느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사라집니다. 왜일까요? 맞서 싸울 때 여러분의 에너지가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절반은 통증에 쓰이고, 나머지 절반은 통증과 싸우는 데 쓰입니다. 그 싸움이 틈을, 균열을 만듭니다. 정말로, 싸울수록 더 아픕니다. 받아들이는 순간, 그 힘은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균열이 아물면 갈등이 남지 않으므로 에너지가 온전히 풀려나고, 그렇게 풀려난 에너지가 치유의 에너지가 됩니다. 낫는 것은 바깥에서 오지 않습니다. 약은 몸이 스스로 낫도록 안의 힘을 깨우는 것을 도울 뿐입니다. 의사가 할 일은 여러분이 스스로 낫는 힘을 찾도록 돕는 것입니다. 건강은 바깥에서 억지로 밀어 넣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에너지가 가득 차는 데서 옵니다. 여여라는 말은 몸의 병에도, 마음의 병에도, 특히 영혼의 병에도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비밀스러운 방법이어서, 바르게 쓰면 모든 병이 끝납니다. 몸에서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낮은 층이기 때문입니다. 그 단계에서 잘되면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십시오. 거기서 실패하면 더 멀리 가기는 어렵습니다.
「몸이 병들면, 긴장을 풀고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 ‘그것이 일의 본성이다.’ 몸은 여러 부분이 모인 것입니다. 몸은 태어났고,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아주 복잡한 기계이니 고장 날 여지도 그만큼 많습니다. 받아들이되, 그것과 자기를 하나로 여기지는 마십시오. 받아들이고 나면 여러분은 담담해지고, 그것에 매이지 않게 됩니다. 맞서 싸울 때 여러분은 몸의 층까지 내려갑니다. 받아들임은 넘어섬입니다. 받아들이면 여러분은 언덕 위에 있고, 몸은 뒤에 남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것이 그것의 본성이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스러진다. 태어나서 죽을 것이라면, 언젠가는 병도 든다. 그러니 지나치게 마음 쓸 일이 아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물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듯 지켜보게 됩니다. 그것이 이 방법의 묘한 쓰임입니다. 싸우지 않을 때 여러분은 위로 올라섭니다. 그것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게 됩니다. 이 넘어섬이 치유의 힘이 됩니다. 그러면 갑자기 몸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걱정, 긴장, 근심, 슬픔 같은 마음의 다른 병들도 같은 법을 따릅니다.」

위파사나 명상홀로 이어지는 지붕 덮인 통로. 초록색 매트가 복도를 따라 짙은 나무 문까지 이어지고, 문 옆 벤치에는 자주색 가사를 입은 스님이 앉아 있으며, 오른쪽에는 수행자들의 여행 가방과 짐이 늘어서 있다
2017년 타이완 타이중, 위파사나 명상홀 입구입니다.

기억해 두세요 — 며칠 뒤에 다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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